백남준Nam June Paik · 1932–2006
비디오 아트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도쿄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하고 독일로 건너가 존 케이지와의 만남을 계기로 전위음악에서 미디어 실험으로 나아갔다. 플럭서스 운동에 참여했으며,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TV 수상기를 예술의 재료로 선보이며 '비디오 아트'라는 장르를 열었다. 1984년 새해 첫날 위성으로 전 세계를 연결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대중적 명성을 얻었고,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대표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1,003대의 모니터를 쌓아 올린 〈다다익선〉(1988)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그의 이름을 딴 백남준아트센터가 용인에 있다.
이중섭Lee Jung-seob · 1916–1956
근대 회화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오산학교에서 배우고 일본 분카가쿠인(문화학원)에서 수학했다.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와 결혼했으나 한국전쟁의 피난 시절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뒤,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담뱃갑 은지에 새긴 은지화와 격정적인 소 그림으로 쏟아냈다. 부산·서귀포 피난기를 거쳐 1955년 미도파화랑 개인전을 열었지만 생활고와 병고 속에 1956년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황소 연작은 민족의 기개와 개인의 절규가 겹쳐진 한국 근대미술의 상징이 되었고, 피난 시절을 보낸 서귀포에 이중섭미술관과 이중섭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박수근Park Soo-keun · 1914–1965
근대 회화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정규 미술교육 없이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고,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으로 화단에 나왔다. 한국전쟁 후 미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었고, 그 시절 만난 외국인 컬렉터들이 초기 후원자가 되었다. 화강암 표면처럼 우둘투둘한 독자적 마티에르 위에 빨래터의 아낙, 나무와 두 여인, 노상의 행상 등 전후 서민의 일상을 절제된 회백색으로 담아 '국민 화가'로 불린다. 사후 그의 예술은 재평가를 거듭했고, 고향 양구에 박수근미술관이 세워졌다.
김환기Kim Whanki · 1913–1974
추상1913년 전남 신안 안좌도에서 태어나 일본 니혼대학에서 수학하며 전위 그룹에서 활동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다. 달항아리와 매화, 산월(山月) 등 한국적 모티프를 세련된 조형으로 옮기던 서울 시기를 지나, 파리 시기(1956–59)를 거쳐 1963년 뉴욕에 정착하며 화면 전체를 점으로 채우는 전면점화에 도달했다. 1970년 한국미술대상을 받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광섭의 시구에서 제목을 얻은 점화의 대표작이다. 두 폭 점화 〈우주〉(1971)는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132억 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이 있다.
유영국Yoo Youngkuk · 1916–2002
기하 추상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도쿄 문화학원에서 수학하며 일본 전위 미술 그룹에서 활동한 한국 추상 1세대 화가다. 해방 후 김환기 등과 신사실파를 결성했고, 평생 '산'이라는 단일 모티프를 삼각형과 색면으로 환원하며 기하 추상의 길을 밀고 나갔다. 강렬한 원색의 대비와 엄격한 구성으로 한국 추상미술에서 김환기와 다른 또 하나의 축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천경자Chun Kyung-ja · 1924–2015
채색화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수학했다. 한국전쟁 무렵 발표한 뱀 무리 그림 〈생태〉(1951)로 화단에 충격을 주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 꽃과 여인, 이국 여행의 기억을 화려한 채색화로 그리며 자전적 서사를 화면에 새겼다. 수필가로도 활동하며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1998년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해 상설 전시실이 운영되어 왔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인도〉의 진위를 둘러싼 오랜 공방은 한국 미술계의 대표적 위작 논쟁으로 남아 있다.
이우환Lee Ufan · 1936–
모노하 · 단색화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학과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60년대 말 사물과 공간의 관계를 사유한 일본 모노하(物派) 운동의 핵심 이론가이자 작가로 활동했고, 캔버스에서는 〈점으로부터〉〈선으로부터〉 연작과 후기의 〈조응〉 연작으로 여백과 최소한의 붓질을 탐구했다. 돌과 철판을 마주 놓는 〈관계항〉 조각을 국제 무대에서 지속해 왔으며, 베르사유궁 초대전(2014)을 비롯해 구겐하임·퐁피두 등에서 전시했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과 일본 나오시마의 이우환미술관 등 전용 공간이 운영되고 있다.
박서보Park Seo-bo · 1931–2023
단색화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홍익대에서 수학했고, 1950년대 후반 한국 앵포르멜 운동을 주도하며 전후 화단의 전위에 섰다. 1967년경 시작한 〈묘법 Écriture〉 연작은 젖은 물감 위에 연필로 선을 반복해 긋는 행위를 회화로 만든 작업으로, 이후 한지를 재료로 한 후기 묘법과 강렬한 단색의 색채 묘법으로 진화하며 반세기 동안 이어졌다. 홍익대 교수와 미술대학장을 지내며 후학을 길렀고 단색화 운동의 중심 인물로 국제적 재평가를 받았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으며 2023년 타계했다.
정상화Chung Sang-hwa · 1932–
단색화1932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했고, 앵포르멜 시기를 거쳐 파리와 고베에 머물며 독자적 방법론을 다듬었다. 캔버스에 고령토를 바르고 말린 뒤 접어 균열을 내고, 떼어낸 자리를 아크릴로 메우는 '뜯어내기와 메우기'의 반복으로 격자의 화면을 쌓아 올린다. 노동에 가까운 공정이 만들어내는 침묵의 표면으로 단색화의 방법론을 가장 엄격하게 밀고 나간 작가로 평가되며,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이 열렸다.
하종현Ha Chong-hyun · 1935–
단색화1935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홍익대를 졸업했고, 1970년대 초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이끌며 실험미술의 전선에 섰다. 1974년부터 이어 온 〈접합 Conjunction〉 연작은 성긴 마대 캔버스 뒤에서 물감을 밀어 넣어 앞면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배압법(背押法)으로, 물성과 행위가 곧 회화가 되는 단색화의 급진적 방법을 보여준다. 만년까지 신작을 발표하며 국제 갤러리들의 전속 작가로 활동해 왔다.
이불Lee Bul · 1964–
설치 · 조각1964년 강원 영월에서 태어나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말 자신의 몸을 매체로 한 급진적 퍼포먼스로 출발해, 1990년대 기계와 신체가 결합된 〈사이보그〉와 촉수 형상의 〈아나그램〉 연작으로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과 본전시에 동시에 참여해 특별표창을 받았고, 이후 유토피아 건축의 꿈과 잔해를 다루는 〈나의 거대서사〉, 거울과 미로의 설치로 확장해 왔다.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이어 온 한국 동시대 미술의 대표 작가다.
양혜규Haegue Yang · 1971–
설치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에서 수학했고 이후 같은 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블라인드를 겹쳐 세운 대규모 설치, 방울을 엮어 움직임과 소리를 내는 조각, 짚과 일상 사물을 엮는 공예적 작업 등 이질적 재료로 감각의 경험을 구축한다.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였고 2012년 카셀 도쿠멘타(13)에 참여했으며, 테이트 모던·퐁피두·MoMA 등 주요 기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